우울의 중독 독백의역설

우울한 감정은 중독된다.
제일 처음 읽었던 하루키의 소설 속에서,
양을 찾아 떠났던 작가처럼
'우울'의 징표를 이마에다 다는 것이다.
(물론 별을 단 것은 그의 친구 G이지만, 주인공은 우울을 달고 있다고, 나는 본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는
자존심을 지키는 마지막 감정이 우울인 것처럼 인식된다.
소비자본주의에서의 행복의 본질이란 참으로 조잡하고,
슬픔은 얕기 짝이 없으며, 그렇다고 좌절을 나의 컨셉으로 잡기에는 나의 존재가 크고 소중하니까.


그래서
'나'이고자 하는 욕망으로
'우울'을 창출하고 공유하고 지속한다.
더불어 사회에 대한 '냉소'도 함께.


우울과 냉소는 자기순환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한번 그것을 내 것으로 체화하면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린다.
그리고 보호막처럼 나를 둘러싸서
나는 그 막으로 인해 '소극적'으로 보호받고
'적극적'으로 사회에서 배제된다.


하루키의 '그'는 사회 부적응자다.
그는 소심하고 힘이 없고 의지가 나약한 '포기자'에 불과해.
나는 절대로 그 낙인을 찍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즐겁고,행복하고,기쁘게.
소비가 아닌, 내 자신으로부터.

덧글

  • 2015/09/13 19:52 # 답글

    2006.02.02 목(싸이월드)

    1.

    사람들은 '웬만큼' 말을 해야만 한다고 한다.
    하루에 정해진 말의 양이 있다는 것이다.
    대화나 강연을 통해 그 '말의 정량'을 채우지 못하면
    혼잣말을 주섬주섬 한다고 한다.
    어딘가서 주워들은 잡스러운 지식이라서
    과학적 검증이 되었는지 따위는
    잘 모르겠다. 만은,


    2.

    말을 할 일이 없으면, 글을 쓰고 싶고
    남이 쓴 것도 읽고 싶어지는 걸로 보아서
    '웬만큼' 말이 되는 소리 같기도 하다.
    진력이 나도록 떠들고 온 날은
    인터넷에 접속하거나, 책을 손에 들거나, 신문을 보거나
    일기를 쓰거나 하지 않게 된다, 나의 경우엔.
    그러나 누구와도 이야기할 수 없을 때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블로그들은 세상에서 젤로 재밌고
    신문의 부고란마저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소통, 연결, 소속의 욕구들이
    '읽는' 지루하고 단조롭고 심심한 작업을
    흥미롭고 감미롭고 편안한 것으로 이끄나보다.



    3.

    작가들은 말을 많이 할까?
    자기 안에 있는 것들을 솔직하게 쏟아내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외로움과 단절을 경험해야 하는 걸까?



    4.


    갑자기 라디오에 확 '꽂혔던' 날들이 생각난다.
    라디오는 심심해서 좋아하지 않았는데
    말할 사람도 없고, 옆에 있는 사람도 없고,
    생활의 필수도구인 컴퓨터마저도 없어가지고서는
    라디오를 하루에 일고여덜시간은 들었다.
    신해철도, 정지영도, 정재용도, 이현우도
    어찌나 다 내친구들 같던지.



    5.


    혼잣말은 심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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